1. 유증과 증여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사망 이후에 물려주겠다는 의사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유증’(유언으로서의 증여)과 ‘사인증여’(사망을 원인으로한 증여)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유증과 사인증여는 모두 증여자가 사망 이전에 특정인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결과를 가져오는 법률행위이고, 둘 다 사망시 효력이 발생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그 법적성격과 요건에 있어 큰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유증은 망인이 유언에 의하여 재산을 수증자(증여받는 사람)에게 무상으로 증여하는 단독행위이고, 사인증여는 생전에 망인이 수증자와 증여계약을 체결해 두고 그 효력이 증여자가 사망한 때부터 발생하는 것으로, 증여로서 수증자의 승낙 또는 동의가 있는 계약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따라서 단독행위인 유증은 증여자가 생전에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자유롭게 취소 또는 철회를 할 수 있으나, 서면으로 작성된 사인증여일 경우에는 증여계약의 무효, 취소 등의 사유가 있어야만 철회를 할 수 있게 됩니다(구두로 약속된 사인증여인 경우 유증과 똑같이 자유롭게 철회가능).
둘째, 유증은 민법에서 정한 일정한 조건을 충족해야 효력이 발생하는 요식행위로 엄격한 요건을 충족해야 효력이 발생합니다. 유언은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라는 5가지 방식 중의 하나여야 하고, 자필증서로 유언을 남길 경우, 본인 자필로 유언의 내용을 쓰면서 본인의 이름, 주소, 작성일, 날인을 해야 하고, 주소의 경우 집의 번지수까지 자세하게 써야 합니다. 만일 위의 내용 중에 하나라도 흠결이 발생하면 유언의 효력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반면, 사인증여는 법이 정한 일정한 조건이 없이, 구두이건 서면이건 간에 당사자들간의 청약과 승낙이라는 의사의 합치만 있으면 됩니다.
실무적으로 사인증여는 유언장의 형식적 흠결로 인해 유언장으로 효력이 없을 때, 사인증여에 기해 증여를 인정받기 위해 소송에서 다투는 경우가 많습니다.
2. 사건의 시작
이○○씨는 과거 이혼을 하였는데, 전처와의 사이에서 아들 이갑돌(가명)을 두었습니다. 이후 이○○씨는 2014년에 김○○씨를 만나 동거를 시작하여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사실혼 상태를 유지하다가 2023년 5월에 사망하였습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사실혼의 배우자인 김○○씨는 애석하게도 사망한 이○○씨의 재산에 대한 상속권이 없고, 이○○씨의 아들인 20세의 이갑돌씨가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하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장례식을 치른 후, 사실혼 배우자인 김○○씨는 사망한 이○○씨의 퇴직금 8,000만원과 사망보험금 1억원에 대해 사망한 이○○씨의 법정상속인인 이갑돌씨 등을 상대로 ‘사인증여에 의한 퇴직금 청구의 소’와 ‘사인증여에 의한 보험금 청구의 소’를 2023년 8월에 각각 제기하였습니다.
소장 2개를 받아본 사망한 이○○씨의 아들인 이갑돌씨가 저희 사무실을 방문하여, 사건을 의뢰하셔서, 저희가 피고인 이갑돌씨의 소송을 맡게 되었습니다.
3. 원고측의 주장과 우리(피고)측의 주장
1) 원고측의 주장
원고는 이○○씨와 2014년부터 이○○씨가 사망한 2023년까지 약 10년간 사실혼 관계였음을 주장하여 이를 입증하기 위해 웨딩사진 및 사망한 이○○씨의 부친과 여동생들의 인감을 찍은‘사실혼 관계 확인서’를 법원에 제출하였습니다.
또한, 원고인 김○○씨는 이○○씨가 사망 이전에, 명절 및 가족행사 자리에서 만약 자신이 잘못되는 일(사망)이 일어나면 사실혼 관계에 있는 원고에게 퇴직금 및 퇴직수당, 국민연금 및 보험금 등을 증여하겠으니, 이○○씨의 부친과 여동생들이 증인이 되어 달라고 자주 말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따라서, 원고는 이○○씨가 생전에 원고에게 퇴직금과 보험금에 대해 사인증여를 하였기 때문에, 피고 이갑돌은 위 퇴직금과 보험금에 대한 상속권한이 없고, 피고 이갑돌이 장례식이 끝나는 자리에서 원고에게 재산 전부가 증여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원고가 알아서 취득하라고 의사표시를 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2) 우리(피고)측의 주장
이○○씨가 사망전에 본인의 재산을 사인증여하였다면, 이처럼 중요한 사인증여의 약정 내용을 문서화하였을 것이지만, 이와 관련한 처분문서 및 약정 내용에 대한 녹취록 등 근거 자료가 없기 때문에 원고의 사인증여 주장은 근거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는 점,
또한, 백번을 양보하여 원고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원고와 이○○씨 사이에서의 사인증여는 민법 제555조상의 서면에 의하지 아니한 증여로서, 각 당사자가 이를 해제할 수 있으므로, 피고는 망 이○○씨의 법정상속인으로서, 망 이○○씨의 증여계약의 당사자로서의 지위 및 해제권을 상속하였으므로, 준비서면을 통하여, (사인)증여계약을 해제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4. 법원의 판결
1) 퇴직금 청구 소송
① 사인증여 인정 여부
망 이○○이 자신이 사망하면 자신의 퇴직금을 원고에게 증여하기로 한 사실(이하 ‘이 사건 사인증여’라 한다)이 인정되므로, 일응 증여자인 망 이○○의 상속인인 피고 이갑돌은 수증자인 원고에게 위 사인증여에 따른 의무를 부담한다.
② 피고 이갑돌의 사인증여 해제 의사표시
민법 제555조가 서면에 의하지 아니한 증여는 해제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증여자가 경솔하게 증여하는 것을 방지함과 동시에 증여자의 의사를 명확하게 하여 후일에 분쟁이 생기는 것을 피하려는데 있고, 결국 증여에 있어서는 계약자유 원칙의 한 내용으로서 ‘방식의 자유’에 일정한 제한이 가해지는 셈이 된다.
일반적으로 계약상의 지위는 상속이 되는데, 증여자 또는 수증자가 제55조에 의하여 증여계약을 해제하지 않은 채 사망한 경우에는 그 지위를 포괄적으로 승계한 상속인이 해제권을 갖게 되고, 사인증여의 경우에는 증여의무를 부담하는 사인증여자의 상속인이 그 해제권을 갖는다 할 것이다.
이 사건 사인증여가 서면에 의해 이뤄졌음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고, 증여자 망 이○○의 상속인인 피고 이갑돌이 2023. 8. 19.자 준비서면의 송달로써 위 사인증여를 해제한다는 의사표시를 하였고, 위 준비서면이 원고에게 도달한 사실은 기록상 분명하다. 따라서 이 사인증여는 적법하게 해제되었다고 할 것이므로, 이를 지적하는 피고 이갑돌의 주장은 이유있다.
이에 대하여 원고는 피고 이갑돌이 이 사건 사인증여에 대해 동의하여 그 해제권을 포기하였다는 취지로 주장하나, 원고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 부족하다.
그렇다면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는 이유 없어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2) 보험금 청구 소송
보험계약자가 피보험자의 상속인을 보험수익자로 하여 맺은 생명보험계약이나 상해보험계약에서 피보험자의 상속인은 피보험자의 사망이라는 보험사고가 발생한 때에는 보험수익자의 지위에서 보험자에 대하여 보험금 지급을 청구할 수 있고, 이 권리는 보험계약의 효력으로 당연히 생기는 것으로서, 상속재산이 아니라 상속인의 고유재산이다(망 이○○의 사망보험금의 보험수익자 기재란에는 사실혼 배우자인 김○○씨가 아닌 아들인 이갑돌씨로 되어있었음).
따라서 위 각 보험의 보험금청구권이 망인의 상속재산이라는 점을 전제로 이를 원고가 망인으로부터 사인증여받았음을 이유로 한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
그렇다면 원고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모두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이로써, 원고는 피고에 대한 2건의 소송(퇴직금 청구 소송과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모두 패소하였고, 피고는 2건의 소송 모두를 승소하게 되었습니다.